
<신사임당의 그림인 '초충도'에 나오는 주요 소재로 꾸민 화단내 연못과 정자의 해질녁 전경>
🏛️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 탐방기, 정원과 오죽(烏竹)이 덮힌 뒷산 등 자연을 담은 사진 위주로 담습니다.
검소한 공간에 깃든, 모자의 위대한 유산...
한국 역사 속에 위인은 많지만, **모자(母子)**가 함께 위인으로 칭송받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또 누가 있을까요?? 저는 생각나는 분들이 떠오르지 않네요..
게다가 천원, 오천원, 만원, 오만원권..
단, 네가지만 존재하는 대한민국 화폐중 2종의 화폐의 주인공이 이 모자지간입니다.
화폐 주인공임에도 그들이 살았던 너무도 검소하고 전혀 화려하지 않은 이 곳...
부질없는 삶을 살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 듯 , 강릉 오죽헌에는 이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덩달아 강원도의 역사와 화폐의 역사를 담은 강릉 시립박물관, 강릉화폐전시관도 함께 덤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이민후 30여년동안 한국을 방문할 때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 부산, 여수, 단양, 순천.. 등 요즘 핫 플레이스라는 곳들은 여러차례 다녀왔지만 강릉은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다가 이번 한국 장기 체류중 드디어 32년만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구비구비 대관령을 넘어 6-7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이곳이(제연식이 나오나요 ㅎㅎ) . 이젠 KTX, 터널공사 끝에 만들어진 새 고속도로로 2시간대에 주파할 수 있다는 점 외엔 괄목할 변화가 없어 보이는 곳...
동해 바다 말고는 타지에서 흔히 보이던 케이블카나 특유에 핫플 관광지가 좀체 관심을 끌지 않는 그저 대중적인 여름 휴양지 정도의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솔직히 그간 방문을 미뤄왔었습니다.
3월 마지막 월요일 정오에 도착, 아직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강릉 중앙시장에 들러 3천원짜리 얼큰한 가성비 갑인 장칼국수로 느끼한 속을 해결, 강릉 본연의 검소한 맛을 이미 체험한 필자는 호텔 체크인 후 이미 구면인 '오죽헌'을 방문키로 했습니다. 강릉의 대표 방문지이며 오후 느즈막에 만만히 갈만한 곳이라 생각후 30여년전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으며 큰 기대없이 들른 '오죽헌'....
"별거 없겠지만 호텔에서 무료하게 있을 바엔...." 그리곤 들른 '오죽헌'
그러나 그곳은 소박, 간소함이 오히려 고결함을 돋보이게 하고, 때마침 뒷동산을 두른 오죽(烏竹)들이 동해 바닷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들은 아직도 세상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탐욕속에 나대는 저를 마냥 비웃는 듯 했습니다.
'Simple is the best' 스티브 잡스는 단순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
이 심플함이 여기 ' 여기에...
한국역사상 최고의 성현인 이율곡이 태어난 곳임에도 현대의 인간들에게는 마냥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소박하다 못해 조촐해보이기 까지한 '오죽헌'과 이에 이어진 그들이 살았던 구옥. 덧붙여 그 앞뒤를 감싼 나즈막한 뒷 동산과 정원은 오백여년전 신사임당과 이율곡 모자가 초저녁 이곳을 거닐며 자애롭게 나누던 대화를 머금다 제게 들려주는 듯 했습니다.
병풍에서나 봄직한 멋드러진 600년 수령의 매화 노목을 보며 지금도 트럼프 관세 등등 세상일에 안달하며 매몰된 저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갖았습니다.
조선의 대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실세 이조판서였던 이율곡, 그리고 그의 어머니이자 예술과 덕행의 상징인 신사임당.
그들의 명성과 직에 걸맞지 않게 한없이 검소하고 간결한 그들의 '오죽헌'은 왜 이 모자가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존경의 대상이 되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부연할 글도 부끄러워 잠잠히 그곳의 자연과 경관을 사진을 위주로 담아봅니다.


<오죽헌으로 연결되는 대문. 5천원 구권에 사용됐던 사진이 이곳서 촬영됐었다>



<오죽헌은 조선초기 지어진 별당건물이며 우측 서너평 남짓한 방에서 율곡선생이 태어났다. 모친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율곡선생이 태어났다하여 몽룡실로 명명>
🌿 "검은 대나무가 우거진 집" — 오죽헌의 이름
오죽헌(烏竹軒)은 말 그대로 ‘검은 대나무가 있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신사임당이 이율곡을 낳고 기른 집으로, 500여 년의 세월을 견디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소박하지만 품격 있는 고택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웅장한 궁궐이나 화려한 사찰과는 달리, 오죽헌은 ‘검소함’과 ‘단아함’이 매력입니다.
기와지붕 아래 낮은 처마, 잘 정돈된 마당, 그리고 그 뒤로 우거진 검은 대나무 숲.
이 모든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져 조선 사대부가의 고요한 정신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죽헌 뒷산의 산책로. 근처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봄을 품은 바람과 오죽이 어울려 내는 소리는 마음에 울림을 준다>


<정원에는 진달래, 철죽이 오죽들 앞에서 허드러지게 피어있다>
👩👦 모자가 함께 위인으로 남은 유일한 기록
신사임당은 단순히 ‘현모양처’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녀는 뛰어난 화가이자 시인, 그리고 자식 교육의 모범을 보여준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품 안에서 자란 이율곡은 조선 유교철학의 거장이자, 수차례 고위직을 거친 실천적 정치가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어머니와 아들이 동시에 위인으로 불리며 한 자리에 모셔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도 매우 드문 예입니다.
두 사람의 초상화가 나란히 전시된 유물관에 들어서면, 이들의 정신적 유산이 단지 가문을 넘어 조선 전체,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강릉화폐전시관에 전시된 오천원권과 오만원권에 각각 사용된 영정들. 오만원권에는 사임당의 묵포도도가 오천원권에는 오죽(烏竹)이 도안되어 있다>


📜 ‘이율곡 탄생지’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
오죽헌은 단순한 고택 그 이상입니다.
이곳은 이율곡이 태어난 장소이며, 그의 사상적 뿌리가 형성된 공간입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그가 걸었을 법한 길, 어머니와 함께한 마루, 바람결에 들리는 대나무 소리마저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 대신 정갈함과 절제미가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절제 속에서 오히려 더 큰 감동이 밀려옵니다





🌸 ‘검소하되 부족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나 고결한’
오죽헌을 다녀오며 가장 마음에 남은 말이 있다면 바로 이 문장입니다.
"검소하되 부족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나 고결하다."
신사임당이 아들에게 남긴 삶의 태도이자, 오죽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
경제의 논리, 속도의 경쟁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이 고택의 ‘느림과 깊이’일지도요.
🧭 작지만 깊은 여행
강릉에 가게 된다면, 바다도 좋지만 오죽헌은 꼭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그곳에는 역사책에서 다 전하지 못한 모자의 이야기가, 대나무 사이사이에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강릉에 가면 꼭 들려야 할 곳, 분주함 속에서 느림의 미학과 성찰의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오죽헌'>

<율곡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문성사에서 내려다 본 전경, 오른쪽이 '오죽헌' 이다>

<깔끔하고 정결한 이미지의 오죽헌은 볼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정신을 보다 염두에 둔다면 더욱 가치있는 곳이 될 듯하다>